1. 개요[편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년 6월 5일 ~ 1936년 8월 19일)
스페인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20세기 스페인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천재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시인 살바도르 달리,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등과 교류하며 '27년 세대'라 불리는 스페인 아방가르드 문학·예술 운동을 주도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향토색 짙은 민요와 집시 문화, 그리고 초현실주의적 감각을 결합한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희곡 분야에서도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으로 이어지는 비극 3부작을 남겨 현대 연극사에 족적을 남겼다. 스페인 내전 초기 파시즘 세력에 의해 비극적으로 총살당하며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스페인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20세기 스페인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천재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시인 살바도르 달리,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등과 교류하며 '27년 세대'라 불리는 스페인 아방가르드 문학·예술 운동을 주도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향토색 짙은 민요와 집시 문화, 그리고 초현실주의적 감각을 결합한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희곡 분야에서도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으로 이어지는 비극 3부작을 남겨 현대 연극사에 족적을 남겼다. 스페인 내전 초기 파시즘 세력에 의해 비극적으로 총살당하며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2. 생애[편집]
1898년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 인근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음악과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그라나다 대학교를 거쳐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법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마드리드의 유명한 학생기숙사에서 달리에, 부뉴엘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예술적 영감을 키웠다. 1928년 발표한 시집 '집시 시집'이 대성공을 거두며 일약 스타 시인으로 떠올랐으나, 예술적 고민과 개인적인 방황으로 뉴욕과 쿠바를 여행했다. 이때의 경험은 문명 비판적인 시집 '뉴욕의 시인'으로 결실을 맺었다.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이 수립되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랑극단 '라 바라카(La Barraca)'를 조직했다. 그는 직접 트럭을 몰고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민중들에게 고전 연극을 상연하는 등 문화 예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 시기 '피의 결혼' 등 그의 대표 희곡들이 연이어 성공하며 극작가로서도 최고의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그의 진보적인 성향과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혐오했던 프랑코 정권의 파시스트 민병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결국 그라나다 인근에서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총살당했으며, 그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죽음 이후 그의 작품들은 프랑코 독재 정권하에서 오랜 기간 금기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