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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리 프뤼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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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 1839년 3월 16일 ~ 1907년 9월 6일)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역사상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1901년)이다. 초기에는 고답파(Parnassien) 운동에 참여하여 감상주의를 배격하고 형식의 완벽함과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으나, 점차 시에 철학과 과학적 사유를 융합하는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2. 생애[편집]

1839년 파리에서 본명인 르네 프랑수아 아르망 프뤼돔(René François Armand Prudhomme)으로 태어났다. 본래 리세 보나파르트에서 공학을 공부하며 과학도를 꿈꿨으나, 심한 안질환을 앓으면서 학업 방향을 법학과 문학으로 선회했다. 공증인 사무소에서 일하며 틈틈이 쓴 시들을 모아 1965년 첫 시집 《시와 시초(Stances et Poèmes)》를 발표했는데, 이 시집에 수록된 시 <깨진 화병(Le Vase brisé)>이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자원입대하여 참전했으나, 전쟁 중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평생 신체적 마비와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 시기의 고통과 전후의 고독은 그의 문학을 단순한 서정시에서 우주와 인류의 운명을 탐구하는 철학적 대서사시로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의(La Justice, 1878)》, 《행복(Le Bonheur, 1888)》 등의 대작을 통해 인간 정신의 구원 가능성을 노래한 그는 188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며 최고 문학가로서의 명예를 얻었다. 1901년 "특별한 고상한 이상주의, 예술적 완벽성, 그리고 마음과 지성의 드문 결합"을 증명한 공로로 제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받은 상금의 대부분을 프랑스 문학가 협회의 신진 시인 지원 기금으로 기부하며 고결한 인품을 보여주었다. 말년에는 지병으로 인해 파리 근교에 은거하며 수필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다가, 1907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