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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
독일의 신학자이자 교수이며, 16세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중심인물이다. 가톨릭 신부였으나 당시 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 부패를 비판하며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하는 신학적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사상은 서구 기독교의 분열과 개신교의 탄생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단순히 종교적 영역을 넘어 독일어 성경 번역을 통해 독일 근대 표준어 확립과 문해율 향상에 기여하는 등 언어와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교수이며, 16세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중심인물이다. 가톨릭 신부였으나 당시 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 부패를 비판하며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하는 신학적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사상은 서구 기독교의 분열과 개신교의 탄생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단순히 종교적 영역을 넘어 독일어 성경 번역을 통해 독일 근대 표준어 확립과 문해율 향상에 기여하는 등 언어와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483년 신성 로마 제국 작센의 아이슬레벤에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벼락 사건을 계기로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했다. 이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던 중, 1517년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게시하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이로 인해 1521년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하고 보름스 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며 거부했다. 이후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신하며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평범한 시민들도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말년에는 종교적 갈등과 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는 데 매진했으며, 1546년 고향인 아이슬레벤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그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안치되었다.
이로 인해 1521년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하고 보름스 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며 거부했다. 이후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신하며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평범한 시민들도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말년에는 종교적 갈등과 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는 데 매진했으며, 1546년 고향인 아이슬레벤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그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