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편집]
리커창(李克強, 1955년 7월 1일 ~ 2023년 10월 27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경제학자로, 제7대 국무원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시진핑 정권의 전반기인 제18기와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하며 중국 경제의 사령탑 역할을 맡았다. 공청단 출신의 대표적인 엘리트 정치인으로, 한때 시진핑과 최고 지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큼 강력한 위상을 가졌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구조개혁과 민간기업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리코노믹스'를 추진했으나, 권력이 시진핑 총서기 1인에게 집중되면서 점차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다. 경제 통계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며 고안한 '리커창 지수'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경제학자로, 제7대 국무원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시진핑 정권의 전반기인 제18기와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하며 중국 경제의 사령탑 역할을 맡았다. 공청단 출신의 대표적인 엘리트 정치인으로, 한때 시진핑과 최고 지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큼 강력한 위상을 가졌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구조개혁과 민간기업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리코노믹스'를 추진했으나, 권력이 시진핑 총서기 1인에게 집중되면서 점차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다. 경제 통계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며 고안한 '리커창 지수'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 생애[편집]
1955년 안후이성 딩위안에서 관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시기 농촌으로 하방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대입 시험(가오카오)이 부활한 후 최고의 명문인 베이징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당내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경제 전문가로 성장했다. 대학 시절부터 공청단에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후진타오 전 총서기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헤난성과 랴오닝성의 당 서기를 거치며 경제 발전을 이끈 공로로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2013년 원자바오의 뒤를 이어 국무원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공급측 개혁과 대중창업을 강조하며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으나, 시진핑의 1인 지배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역대 총리들에 비해 권한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내 빈곤층 문제를 솔직하게 시인하는 등 서민적이고 개혁적인 면모를 보여 인기를 얻었다.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2023년 3월 총리직에서 퇴임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은퇴 후 약 7개월 만인 2023년 10월 27일,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향년 68세에 세상을 떠났다.